일하시는 이모님이 독감이라 못나오실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새해 첫 노동일은 내가 아무래도 살펴야 하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편히 쉬시라하고, 오늘은 평소와 달리 이른 출근을 했다.
빨래도 하고, 방 청소 할 것도 두 개나 있고, 밀린 쓰레기 처리에..
할일이 많았다.
운전을 할 때, 평소는 배경사운드로 유튜브를 틀지만 오늘은 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잔잔하게 들어야지, 싶은 마음으로 전자 도서관에 들어가 신착 도서를 죽죽 내린다.
그러다 발견한 책은 정인선 작가의 산문집 <사는 이유> 이었다.

하루 종일 이 책을 들으며 일하고 밥먹고 운전했는데
군데군데 아주 공감하면서 낄낄대면서 즐겁게 들었다.
라디오처럼 듣다보니, 군데군데 포커싱이 되었다가 멀어졌다가 하느라
어느 문장 하나만 귀에 쏙 들어왔다 멀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공감가는 내용에서는 온통 정신이 뺏기기도 하고 그랬다.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둘째를 들일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주억주억 공감.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내용은 작가가 사진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고 직장일에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건 사진이 아니었을지도. 사진이라는 대상에 몰입하는 행위 그 자체 혹은 열정적인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도쿄 생활 이야기.
"나는 평범함을 공부했다. 나는 강렬하게 평범하고 싶었다. 중간쯤 가고 싶었다. 사는 동안 중간쯤 되는 사람이기를 이렇게 열망했던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 6개월 정도 생활했을 때가 생각났다.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했는데, 어디 있어도 느끼는 외지인으로서의 외로움이 있었다. 아르바이트에서 하면서도 응대 표현에 서툴러 실수를 여러번 했었다. 손님 응대를 하다가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잘못 써서 손님을 화나게 했는데, 대체 왜 화내고 있는지 모르겠는 웃픈 상황도 겪었었다. 아르바이트 휴게실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면 느꼈던 그 외로운 기분이 떠올라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하던 아니 인식조차 못했던, 고마움을 주고받는 것의 소중함.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쁘게 하고, 쓸모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건 행복하구나."
일본에서 꼭 간다는 식당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주억주억 공감이 갔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오늘도 이 귀한 걸 먹을 수 있는 삶이라니 감사하지 않은가. 먹으면서 위로를 받고 그러면서 생각한다. 오래오래 톤키가 유지되기를."
나도 정말 좋아하는 식당이나 가게를 가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
오랜만에 이런 책을 만나면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생각하던 것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기분이 들고, 또 그 생각을 예쁘고 정갈하게 잘 정리해줘서 '그래 뒤죽박죽 말도 안되게 얘기했지만 바로 이런 기분이었어!!!'라고 속으로 소리지르게 만드는거다.
<사는 이유> 오늘의 반가움이었다.
덕분에 키득키득하며 힘든지 모르게 일할 수 있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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